- 태극기 -

- 무궁화 -

이응준 태극기 - 1930년 대 미국에서 제작된 태극기. 이 태극기는 1942년 당시 독립운동을 펼치던 이승만 박사가 뉴욕의 월도프아스토리아 호텔에서 대한민국의 독립을 호소하는 만찬회 때 사용했다고 전한다. 국외에서 활동한 애국지사들에게 그리고 국가적인 행사 어디서나 태극기가 정신적 지주였다.

이응준 태극기 - 1930년 대 미국에서 제작된 태극기. 이 태극기는 1942년 당시 독립운동을 펼치던 이승만 박사가 뉴욕의 월도프아스토리아 호텔에서 대한민국의 독립을 호소하는 만찬회 때 사용했다고 전한다. 국외에서 활동한 애국지사들에게 그리고 국가적인 행사 어디서나 태극기가 정신적 지주였다.

이무호(서예)-나라꽃 무궁화 향기 육대주를 진동시킨다

이무호(서예)-나라꽃 무궁화 향기 육대주를 진동시킨다

박영호 태극기 - 고종의 외교고문을 지냈던 미국인 데니가 1890년 미국으로 돌아갈 때 고종께서 선물로 주었던 태극기. 대한제국 시대까지 사용되던 태극기와 태극기를 거는 끈이 오른쪽에 있어 당시에는 태극기의 오른쪽을 국기봉에 매달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박영호 태극기 - 고종의 외교고문을 지냈던 미국인 데니가 1890년 미국으로 돌아갈 때 고종께서 선물로 주었던 태극기. 대한제국 시대까지 사용되던 태극기와 태극기를 거는 끈이 오른쪽에 있어 당시에는 태극기의 오른쪽을 국기봉에 매달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최진옥(한국화)-백단심 무궁화 만발했도다.

최진옥(한국화)-백단심 무궁화 만발했도다.

현존하는 최초의 태극기-임오군란 후 수신사로 일본에 건너간 박영효 일행이 조선 국기로 처음 사용하였다. 1883년에 국기로 공식 선포되었으며, 1942년에 대한 민국 임시 정부에서 처음 '태극기'란 명칭을 썼다. 사진은 1884년에 제작된 태극기이다.

현존하는 최초의 태극기-임오군란 후 수신사로 일본에 건너간 박영효 일행이 조선 국기로 처음 사용하였다. 1883년에 국기로 공식 선포되었으며, 1942년에 대한 민국 임시 정부에서 처음 '태극기'란 명칭을 썼다. 사진은 1884년에 제작된 태극기이다.

박영실(한국화)-나라꽃 (무궁화)향기 삼천리 금수강산에 펼친다.

박영실(한국화)-나라꽃 (무궁화)향기 삼천리 금수강산에 펼친다.

데니 태극기 - 고종의 외교고문을 지냈던 미국인 데니가 1890년 미국으로 돌아갈 때 고종께서 선물로 주었던 태극기. 대한제국 시대까지 사용되던 태극기와 태극기를 거는 끈이 오른쪽에 있어 당시에는 태극기의 오른쪽을 국기봉에 매달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데니 태극기 - 고종의 외교고문을 지냈던 미국인 데니가 1890년 미국으로 돌아갈 때 고종께서 선물로 주었던 태극기. 대한제국 시대까지 사용되던 태극기와 태극기를 거는 끈이 오른쪽에 있어 당시에는 태극기의 오른쪽을 국기봉에 매달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채태병 (한국화)-무궁화와 호랑이 그리고 소나무 한국적인 혼이 담긴 명화

채태병 (한국화)-무궁화와 호랑이 그리고 소나무 한국적인 혼이 담긴 명화

독립신문 표제- 1919년 3.1운동 시기 독립운동가 남상락(1892∼1943)이 충남 당진군 지역에서 사용했던 태극기. 흰색 명주에 색실로 수를 놓아 만들었으며, 4괘의 배열이 건곤리감으로 되어 있다. 1986년 10월 남상락의 아들 남선우가 독립기념관에 기증했다.

독립신문 표제- 1919년 3.1운동 시기 독립운동가 남상락(1892∼1943)이 충남 당진군 지역에서 사용했던 태극기. 흰색 명주에 색실로 수를 놓아 만들었으며, 4괘의 배열이 건곤리감으로 되어 있다. 1986년 10월 남상락의 아들 남선우가 독립기념관에 기증했다.

서연경(한국화)-불타는 무궁화 정열의 꽃

서연경(한국화)-불타는 무궁화 정열의 꽃

배설유품-일제에 항거한 영국 언론인 배설(Ernest Bethell) (1872∼1909)이 소장했던 태극기. 배설은 1904년 러일전쟁이 일어나자 대한제국에 특파원으로 입국해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했으며, 1908년 청으로 추방되었다가 다시 서울로 돌아온 뒤 1909년 사망했다. 대한민국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배설유품-일제에 항거한 영국 언론인 배설(Ernest Bethell) (1872∼1909)이 소장했던 태극기. 배설은 1904년 러일전쟁이 일어나자 대한제국에 특파원으로 입국해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했으며, 1908년 청으로 추방되었다가 다시 서울로 돌아온 뒤 1909년 사망했다. 대한민국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최윤호 -무궁화는 금수강산에 곱게 피었다.

최윤호 -무궁화는 금수강산에 곱게 피었다.

명신여학교-명신여학교 태극기는 1906년 5월 설립된 여학교로서 우리나라 새시대 여성교육에 크게 공헌한 현재의 숙명여고, 여대의 전신이다. 이 태극기는 4괘와 태극문양의 틀을 만들어 찍어 내는 기법으로 제작했다. 4괘의 배열이 감곤건리로 되어 있다.

명신여학교-명신여학교 태극기는 1906년 5월 설립된 여학교로서 우리나라 새시대 여성교육에 크게 공헌한 현재의 숙명여고, 여대의 전신이다. 이 태극기는 4괘와 태극문양의 틀을 만들어 찍어 내는 기법으로 제작했다. 4괘의 배열이 감곤건리로 되어 있다.

김정일(서예) -산과들에 무궁화피는 나라

김정일(서예) -산과들에 무궁화피는 나라

선교장태극기- 1950년 일어난 한국전쟁 당시 경주시 지역에서 자원한 학도병들의 서명이 있는 태극기. 학도병들의 굳은 의지와 각오가 태극기 바탕에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다.

선교장태극기- 1950년 일어난 한국전쟁 당시 경주시 지역에서 자원한 학도병들의 서명이 있는 태극기. 학도병들의 굳은 의지와 각오가 태극기 바탕에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다.

이선주(서예) -옛부터 무궁화의 기상 백성들과 함께 했다.

이선주(서예) -옛부터 무궁화의 기상 백성들과 함께 했다.

동덕여자의 숙 태극기-1950년 9월 부산에 주둔하고 있던 육군부대에서 학도병에 자원한 학생들이 서명한 태극기. 부산에 있던 건국법정대학 학생들이 주축이 되었다. 생사를 넘나들던 전쟁터에서 고이 간직되어 온 태극기이다.

동덕여자의 숙 태극기-1950년 9월 부산에 주둔하고 있던 육군부대에서 학도병에 자원한 학생들이 서명한 태극기. 부산에 있던 건국법정대학 학생들이 주축이 되었다. 생사를 넘나들던 전쟁터에서 고이 간직되어 온 태극기이다.

원영상(서예) -무궁화꽃 향기 백리가고 덕의향기 만리간다.

원영상(서예) -무궁화꽃 향기 백리가고 덕의향기 만리간다.

태극기 목판(등록문화재 제385호)-1919년 3.1운동 시기 태극과 4괘를 양각으로 조각해 태극기를 찍어내던 목판. 일제 감시의 눈을 피해 짧은 시간에 많은 양의 태극기를 만들 수 있었으며, 인쇄된 태극기의 4괘 배열이 건곤이감으로 되어 있다

태극기 목판(등록문화재 제385호)-1919년 3.1운동 시기 태극과 4괘를 양각으로 조각해 태극기를 찍어내던 목판. 일제 감시의 눈을 피해 짧은 시간에 많은 양의 태극기를 만들 수 있었으며, 인쇄된 태극기의 4괘 배열이 건곤이감으로 되어 있다

김 난규(서예)-호국영령함께하는 영원토록 함께하리.

김 난규(서예)-호국영령함께하는 영원토록 함께하리.

진관사 소장 태극기및 (등록문화재 제458호)- 1919년 3.1운동 독립운동으로 전국에서 만세소리가 울려퍼질 때 서울 은평구 소재 진관사의 스님들이 일본의 일장기로 태극기를 만들어 사용했다. 2009년 5월 진관사의 칠성각을 해체하면서 이 태극기와 다른 유물들이 함께 발견되었다. 4괘의 배열이 건곤리감으로 되어 있다.

진관사 소장 태극기및 (등록문화재 제458호)- 1919년 3.1운동 독립운동으로 전국에서 만세소리가 울려퍼질 때 서울 은평구 소재 진관사의 스님들이 일본의 일장기로 태극기를 만들어 사용했다. 2009년 5월 진관사의 칠성각을 해체하면서 이 태극기와 다른 유물들이 함께 발견되었다. 4괘의 배열이 건곤리감으로 되어 있다.

박무인 (한국화)-태극기와 백단심 애국충정 펄럭인다.

박무인 (한국화)-태극기와 백단심 애국충정 펄럭인다.

남상락자수태극기- 1919년 3.1운동 시기 독립운동가 남상락(1892∼1943)이 충남 당진군 지역에서 사용했던 태극기. 흰색 명주에 색실로 수를 놓아 만들었으며, 4괘의 배열이 건곤리감으로 되어 있다. 1986년 10월 남상락의 아들 남선우가 독립기념관에 기증했다.

남상락자수태극기- 1919년 3.1운동 시기 독립운동가 남상락(1892∼1943)이 충남 당진군 지역에서 사용했던 태극기. 흰색 명주에 색실로 수를 놓아 만들었으며, 4괘의 배열이 건곤리감으로 되어 있다. 1986년 10월 남상락의 아들 남선우가 독립기념관에 기증했다.

노영동 (한국화)-피고지는 무궁화 100일을 계속 핀다.

노영동 (한국화)-피고지는 무궁화 100일을 계속 핀다.

숭실대 태극기 -1919년 3.1운동 시기 평양 숭실학교에서 일어난 항일시위에 사용했던 태극기. 이 태극기는 지금의 태극기와 건곤감리의 배열이 같다. 숭실학교는 지금의 숭실대학교의 전신으로 1897년 평양에서 숭실학당으로 시작했다. 1906년 대학부를 설치하고 숭실대학이 되었지만 일제의 탄압으로 숭실학교로 개명했다가 1925년 전문학교로 격하되었다.

숭실대 태극기 -1919년 3.1운동 시기 평양 숭실학교에서 일어난 항일시위에 사용했던 태극기. 이 태극기는 지금의 태극기와 건곤감리의 배열이 같다. 숭실학교는 지금의 숭실대학교의 전신으로 1897년 평양에서 숭실학당으로 시작했다. 1906년 대학부를 설치하고 숭실대학이 되었지만 일제의 탄압으로 숭실학교로 개명했다가 1925년 전문학교로 격하되었다.

홍정선 (서양화)-송이송이 백단심 피고 피고 또 핀다.

홍정선 (서양화)-송이송이 백단심 피고 피고 또 핀다.

18d 삼일운동때 사용된것으로 추정되는 휴대용 태극기 일제의 감시가 엄했던 시절, 몸에 숨기고 휴대하기 쉽게 만들었다. - 1919년 3.1운동 시기에 제작된 소형 태극기. 접을 수 있게 만들었기 때문에 휴대용으로 사용되었다. 태극의 음양이 좌우로 위치한다. 10cm 길이로 축소할 수 있어 감시가 심했던 상황에서 애국지사들이 비밀증표로 가지고 다니기 편리했다.

18d 삼일운동때 사용된것으로 추정되는 휴대용 태극기 일제의 감시가 엄했던 시절, 몸에 숨기고 휴대하기 쉽게 만들었다. - 1919년 3.1운동 시기에 제작된 소형 태극기. 접을 수 있게 만들었기 때문에 휴대용으로 사용되었다. 태극의 음양이 좌우로 위치한다. 10cm 길이로 축소할 수 있어 감시가 심했던 상황에서 애국지사들이 비밀증표로 가지고 다니기 편리했다.

김미숙(서양화)-홍단심 나라꽃 아름답게 피었다.

김미숙(서양화)-홍단심 나라꽃 아름답게 피었다.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유관순 열사 (1902~1920)가 대한독립만세를 외칠 때 사용했던 태극기. 목판으로 찍어낸 것이다. 유관순 열사의 충성어린 애국심은 국내외에 널리 알려졌고 후손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태극과 4괘의 배열이 오늘날 태극기과 같다. (국회현정기념관 소장)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유관순 열사 (1902~1920)가 대한독립만세를 외칠 때 사용했던 태극기. 목판으로 찍어낸 것이다. 유관순 열사의 충성어린 애국심은 국내외에 널리 알려졌고 후손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태극과 4괘의 배열이 오늘날 태극기과 같다. (국회현정기념관 소장)

김의숙(서양화)-보라빛 무궁화와 훈민정음

김의숙(서양화)-보라빛 무궁화와 훈민정음

대한독립만세 (등록문화재 제387호)-미국에서 제작되어 독립운동에 사용된 태극기. 가늘고 긴 삼각형 모양의 모직 원단으로 만든 깃발형 태극기로 ‘대한독립만세’라는 글자와 태극기를 인쇄한 천이 원단에 바느질되어 있다. 글자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수놓았고 태극기의 4괘는 이감건곤으로 배열되었다.

대한독립만세 (등록문화재 제387호)-미국에서 제작되어 독립운동에 사용된 태극기. 가늘고 긴 삼각형 모양의 모직 원단으로 만든 깃발형 태극기로 ‘대한독립만세’라는 글자와 태극기를 인쇄한 천이 원단에 바느질되어 있다. 글자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수놓았고 태극기의 4괘는 이감건곤으로 배열되었다.

강은비(서양화)-무궁화.핀 하늘에는 태극기 휘날린다.

강은비(서양화)-무궁화.핀 하늘에는 태극기 휘날린다.

22a--774-01 1의정원 대한민국임시 의정원태극기(등록문화재 제395-1호)- 대한민국임시 의정원 태극기는 여러 개가 있다. 문화재로 등록된 태극기도 2개가 있고 의정원 요인들이 귀국당시 가져온 의정원 태극기도 있다. 그 중에서 1919년 4월 10일 제1차 회의에서 ‘대한민국임시의정원’이라는 명칭을 결정할 당시에 사용된 태극기가 임시 의정원 태극기이다.

22a--774-01 1의정원 대한민국임시 의정원태극기(등록문화재 제395-1호)- 대한민국임시 의정원 태극기는 여러 개가 있다. 문화재로 등록된 태극기도 2개가 있고 의정원 요인들이 귀국당시 가져온 의정원 태극기도 있다. 그 중에서 1919년 4월 10일 제1차 회의에서 ‘대한민국임시의정원’이라는 명칭을 결정할 당시에 사용된 태극기가 임시 의정원 태극기이다.

강희수(한국화)-보라꽃 청단심 꽃한송이

강희수(한국화)-보라꽃 청단심 꽃한송이

25-13 -1932년 4월 대한민국임시정부 김구 주석(1876∼1949)과 윤봉길 의사(1928∼1932)가 항일 거사를 앞두고 기념사진을 찍을 때 걸었던 태극기. 윤봉길 의사는 이 사진을 찍은 후 4월 29일 중국 상해에서 열린 일왕의 생일기념 행사장에서 폭탄을 투척했다.윤봉길 의사의 이 거사는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고 이를 계기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독립운동의 구심체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다.

25-13 -1932년 4월 대한민국임시정부 김구 주석(1876∼1949)과 윤봉길 의사(1928∼1932)가 항일 거사를 앞두고 기념사진을 찍을 때 걸었던 태극기. 윤봉길 의사는 이 사진을 찍은 후 4월 29일 중국 상해에서 열린 일왕의 생일기념 행사장에서 폭탄을 투척했다.윤봉길 의사의 이 거사는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고 이를 계기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독립운동의 구심체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다.

박채배(한국화)-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박채배(한국화)-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23a-01 1의정원 대한민국임시정부 의정원 태극기(등록문화재 제395-2호)-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위원을 지낸 김붕준의 집에 소장하고 있던 태극기. 3점 가운데 1점이다. 김봉준의 부인이 1940년경에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태극의 음양은 모두 좌우로 위치하며 4괘의 배열이 2점은 건곤리감으로 1점은 건곤감리로 되어 있다.

23a-01 1의정원 대한민국임시정부 의정원 태극기(등록문화재 제395-2호)-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위원을 지낸 김붕준의 집에 소장하고 있던 태극기. 3점 가운데 1점이다. 김봉준의 부인이 1940년경에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태극의 음양은 모두 좌우로 위치하며 4괘의 배열이 2점은 건곤리감으로 1점은 건곤감리로 되어 있다.

황경애(한국화)-무궁화백단심 황금빛 장식

황경애(한국화)-무궁화백단심 황금빛 장식

26a-멕시코한인회태극기- 1905년 대한제국인들의 미국과 멕시코 이주가 시작되었다. 멕시코로 이주한 대한제국인들은 한인회를 결성하고 활동했는데 1935년 멕시코시티에 한인회관을 마련하고 한글교육과 대한민국의 독립운동을 지원했다. 멕시코 한인회에서 사용했던 태극기로 4괘의 배열이 오늘날과 같다.

26a-멕시코한인회태극기- 1905년 대한제국인들의 미국과 멕시코 이주가 시작되었다. 멕시코로 이주한 대한제국인들은 한인회를 결성하고 활동했는데 1935년 멕시코시티에 한인회관을 마련하고 한글교육과 대한민국의 독립운동을 지원했다. 멕시코 한인회에서 사용했던 태극기로 4괘의 배열이 오늘날과 같다.

김성수(서양화)-민족의 혼, 안중근의사와 태극,무궁화

김성수(서양화)-민족의 혼, 안중근의사와 태극,무궁화

대한민국임시정부광복군총사령부성립 전례식태극기- 1940년 9월 17일 대한민국 광복군 성립전례식에서 게양된 태극기. 중화민국의 청천백일기와 함께 게양되었다. 대한민국 광복군은 광복 후 국내에 국내지대를 두었지만 1946년 1월 15일 해산되었다. 중국에 남아있던 광복군은 1946년 5월 16일 국공내전 속에서 해체되었다..

대한민국임시정부광복군총사령부성립 전례식태극기- 1940년 9월 17일 대한민국 광복군 성립전례식에서 게양된 태극기. 중화민국의 청천백일기와 함께 게양되었다. 대한민국 광복군은 광복 후 국내에 국내지대를 두었지만 1946년 1월 15일 해산되었다. 중국에 남아있던 광복군은 1946년 5월 16일 국공내전 속에서 해체되었다..

허양숙(한국화)-전통무궁화 화려강산

허양숙(한국화)-전통무궁화 화려강산

김구서명문태극기 - “망국의 설움을 면하려거든, 자유와 행복을 누리려거든 정력과 인력과 물력을 광복군에게 바쳐 강노말세(强弩末勢)인 원수 일본을 타도하고 조국의 광복을 완성하자” 라는 대한민국임시정부 김구 주석의 서명이 있다. 이 태극기는 김구 주석이 1941년 벨기에 출신 매우사 신부를 통해 미국에 있는 한인 교포들에게 보낸 태극기이다.

김구서명문태극기 - “망국의 설움을 면하려거든, 자유와 행복을 누리려거든 정력과 인력과 물력을 광복군에게 바쳐 강노말세(强弩末勢)인 원수 일본을 타도하고 조국의 광복을 완성하자” 라는 대한민국임시정부 김구 주석의 서명이 있다. 이 태극기는 김구 주석이 1941년 벨기에 출신 매우사 신부를 통해 미국에 있는 한인 교포들에게 보낸 태극기이다.

김종관(한국화)-무궁화 나라꽃 사랑

김종관(한국화)-무궁화 나라꽃 사랑

뉴욕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 게양 태극기 - 1930년 대 미국에서 제작된 태극기. 이 태극기는 1942년 당시 독립운동을 펼치던 이승만 박사가 뉴욕의 월도프아스토리아 호텔에서 대한민국의 독립을 호소하는 만찬회 때 사용했다고 전한다. 국외에서 활동한 애국지사들에게 그리고 국가적인 행사 어디서나 태극기가 정신적 지주였다.

뉴욕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 게양 태극기 - 1930년 대 미국에서 제작된 태극기. 이 태극기는 1942년 당시 독립운동을 펼치던 이승만 박사가 뉴욕의 월도프아스토리아 호텔에서 대한민국의 독립을 호소하는 만찬회 때 사용했다고 전한다. 국외에서 활동한 애국지사들에게 그리고 국가적인 행사 어디서나 태극기가 정신적 지주였다.

김옥배(한국화)-백두산 천지와 나라꽃 무궁화

김옥배(한국화)-백두산 천지와 나라꽃 무궁화

광복군 인면전구공작대 태극기-1943년 8월29일 인도 주둔 영국군에 파견된 대한민국 광복군 인면전구공작대원들이 소지하고 있던 태극기. 4괘의 배열이 곤리건감으로 되어있다. 인면전구공작대원들은 인도와 미얀마의 국경지대인 임팔(Imphal) 지역에서 벌어진 영국군과 일본군의 전투에 참전했다가 1945년 8월 광복 직후 중국 중경으로 귀환했다.

광복군 인면전구공작대 태극기-1943년 8월29일 인도 주둔 영국군에 파견된 대한민국 광복군 인면전구공작대원들이 소지하고 있던 태극기. 4괘의 배열이 곤리건감으로 되어있다. 인면전구공작대원들은 인도와 미얀마의 국경지대인 임팔(Imphal) 지역에서 벌어진 영국군과 일본군의 전투에 참전했다가 1945년 8월 광복 직후 중국 중경으로 귀환했다.

차숙희(한국화)-태극기와 무궁화 민족의 혼

차숙희(한국화)-태극기와 무궁화 민족의 혼

이대박물관 태극기 자료(장준하 태극기) - 대한민국임시정부 태극기. 1944년 대한민국임시정부 김구 주석이 대한민국 광복군 대원으로 활동하던 장준하 선생(1915∼1975)에게 하사한 태극기이다. 장준하 선생이 소장하고 있던 것으로 1975년 이화여대박물관에 기증되었다.

이대박물관 태극기 자료(장준하 태극기) - 대한민국임시정부 태극기. 1944년 대한민국임시정부 김구 주석이 대한민국 광복군 대원으로 활동하던 장준하 선생(1915∼1975)에게 하사한 태극기이다. 장준하 선생이 소장하고 있던 것으로 1975년 이화여대박물관에 기증되었다.

박하나(한국화)-어느곳에 피어나도 무궁화 향기

박하나(한국화)-어느곳에 피어나도 무궁화 향기

한국광복군 서명문- 1945년 2월 한국광복군 문웅명 대원이 간직했던 태극기. 동료대원들의 서명이 태극기의 여백에 가득 담겨있는데 조국광복의 환희, 바람직한 국가상, 독립국가에 대한 염원 등이다. 4괘의 배열이 건곤리감으로 되어 있다.

한국광복군 서명문- 1945년 2월 한국광복군 문웅명 대원이 간직했던 태극기. 동료대원들의 서명이 태극기의 여백에 가득 담겨있는데 조국광복의 환희, 바람직한 국가상, 독립국가에 대한 염원 등이다. 4괘의 배열이 건곤리감으로 되어 있다.

박춘자(한국화)-아름답게 피었다고 노래하며 무궁화꽃

박춘자(한국화)-아름답게 피었다고 노래하며 무궁화꽃

1945년 8월 15일 평양시민들의 광복자축 행사장에 나온 태극기. 광복의 감격은 어디서나 다를 바 없었다. 이 날의 감격은 서울 못지않게 평양에서도 열기가 뜨거웠다. 이 날을 위해 수많은 애국지사들이 피흘리고 목숨을 바폈다.

1945년 8월 15일 평양시민들의 광복자축 행사장에 나온 태극기. 광복의 감격은 어디서나 다를 바 없었다. 이 날의 감격은 서울 못지않게 평양에서도 열기가 뜨거웠다. 이 날을 위해 수많은 애국지사들이 피흘리고 목숨을 바폈다.

이승재(한국화)-건곤감리 태극과 무궁화

이승재(한국화)-건곤감리 태극과 무궁화

1932년 4월 대한민국임시정부 김구 주석(1876∼1949)과 윤봉길 의사(1928∼1932)가 항일 거사를 앞두고 기념사진을 찍을 때 걸었던 태극기. 윤봉길 의사는 이 사진을 찍은 후 4월 29일 중국 상해에서 열린 일왕의 생일기념 행사장에서 폭탄을 투척했다.윤봉길 의사의 이 거사는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고 이를 계기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독립운동의 구심체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다.

1932년 4월 대한민국임시정부 김구 주석(1876∼1949)과 윤봉길 의사(1928∼1932)가 항일 거사를 앞두고 기념사진을 찍을 때 걸었던 태극기. 윤봉길 의사는 이 사진을 찍은 후 4월 29일 중국 상해에서 열린 일왕의 생일기념 행사장에서 폭탄을 투척했다.윤봉길 의사의 이 거사는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고 이를 계기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독립운동의 구심체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다.

류선정(한국화)-나라꽃 무궁화. 금강산 괴암절벽

류선정(한국화)-나라꽃 무궁화. 금강산 괴암절벽

1945년 8월 15일 평양시민들의 광복자축 행사장에 나온 태극기. 광복의 관념은 어디서나 다를 바 없었다. 이 날의 감격은 서울 못지않게 평양에서도 열기가 뜨거웠다. 이 날을 위해 수많은 애국지사들이 피흘리고 목숨을 바쳤다.

1945년 8월 15일 평양시민들의 광복자축 행사장에 나온 태극기. 광복의 관념은 어디서나 다를 바 없었다. 이 날의 감격은 서울 못지않게 평양에서도 열기가 뜨거웠다. 이 날을 위해 수많은 애국지사들이 피흘리고 목숨을 바쳤다.

심명희(서양화)-하늘을 우러러 천지화 무궁화

심명희(서양화)-하늘을 우러러 천지화 무궁화

해방경축 종합경기(1945.10.27)손기정 (광복경축종합경기대회 태극기)- 1945년 10월 27일 광복경축종합경기대회에서 손기정 선수(1912∼2002)가 들고 있던 태극기. 대표단 기수로 입장하면서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리고 있다. 손기정 선수는 1936년 제11회 베를린 올림픽대회 마라톤경기에서 우승했다.

해방경축 종합경기(1945.10.27)손기정 (광복경축종합경기대회 태극기)- 1945년 10월 27일 광복경축종합경기대회에서 손기정 선수(1912∼2002)가 들고 있던 태극기. 대표단 기수로 입장하면서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리고 있다. 손기정 선수는 1936년 제11회 베를린 올림픽대회 마라톤경기에서 우승했다.

김경원 (서양화)-태극기와 어울러진 무궁화 꽃송이

김경원 (서양화)-태극기와 어울러진 무궁화 꽃송이

대한민국임시정부 환국기념 태극기 - 1945년 11월 3일 중국 중경에서 거행된 대한민국 임시정부 환국기념 행사장에 게양된 태극기. 4괘의 배열이 건곤리감으로 되어 있다. 대한민국임시정부는 1945년 8월 15일 중국 중경에서 광복을 맞이하고 1945년 11월 23일 서울로 환국했다.

대한민국임시정부 환국기념 태극기 - 1945년 11월 3일 중국 중경에서 거행된 대한민국 임시정부 환국기념 행사장에 게양된 태극기. 4괘의 배열이 건곤리감으로 되어 있다. 대한민국임시정부는 1945년 8월 15일 중국 중경에서 광복을 맞이하고 1945년 11월 23일 서울로 환국했다.

김수복 (한국화)-나라꽃은 향기가 만리에 퍼진다.

김수복 (한국화)-나라꽃은 향기가 만리에 퍼진다.

신탁통치 반대 태극기 - 신탁통치를 반대하여 시민들이 서울 서대문구 광교장 앞 집회에 들고 나왔던 태극기. 1945년 12월 모스크바 회의에서 연합국인 미국, 영국, 소련 3국은 한반도에 임시정부를 수립하고 연합국이 5년 간의 신탁통치를 실시할 수 있다는 결정서를 합의했다.

신탁통치 반대 태극기 - 신탁통치를 반대하여 시민들이 서울 서대문구 광교장 앞 집회에 들고 나왔던 태극기. 1945년 12월 모스크바 회의에서 연합국인 미국, 영국, 소련 3국은 한반도에 임시정부를 수립하고 연합국이 5년 간의 신탁통치를 실시할 수 있다는 결정서를 합의했다.

박소령 (한국화)-백단심 무궁화 노령수에 피었다.

박소령 (한국화)-백단심 무궁화 노령수에 피었다.

진해 해군관사 태극기 - 미군정 시기였던 1946년 3.1절경남 진해시 해군관사에서 게양되었던 태극기. 4괘의 배열이 건곤리감으로 되어 있다

진해 해군관사 태극기 - 미군정 시기였던 1946년 3.1절경남 진해시 해군관사에서 게양되었던 태극기. 4괘의 배열이 건곤리감으로 되어 있다

안필영 (서양화)-애국가와 무궁화

안필영 (서양화)-애국가와 무궁화

런더올림픽 참가기념 페널트 태극기 (등록문화재 제492호) 1948년 7월 제14회 런던올림픽대회에 참가하면서 대한민국 대표선수단이 가져간 페널트에 새겨진 태극기. 조선올림픽대표단이라는 표기가 보인다. 4괘의 배열이 건곤리감으로 되어 있다.

런더올림픽 참가기념 페널트 태극기 (등록문화재 제492호) 1948년 7월 제14회 런던올림픽대회에 참가하면서 대한민국 대표선수단이 가져간 페널트에 새겨진 태극기. 조선올림픽대표단이라는 표기가 보인다. 4괘의 배열이 건곤리감으로 되어 있다.

이선지 (한국화) -무궁화 언제보아도 아릅답다.

이선지 (한국화) -무궁화 언제보아도 아릅답다.

이철희 사변폭팔- 1950년 6월 한국전쟁 시기에 육군특무상사 이철희가 지니고 있던 태극기. 네 귀퉁이에 사변폭발이라는 글씨가 씌어있고 육군의 북진경로가 표기되어 있다. 한국전쟁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이철희 사변폭팔- 1950년 6월 한국전쟁 시기에 육군특무상사 이철희가 지니고 있던 태극기. 네 귀퉁이에 사변폭발이라는 글씨가 씌어있고 육군의 북진경로가 표기되어 있다. 한국전쟁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이수연 (서양화)- 유관순 열사와 무궁화

이수연 (서양화)- 유관순 열사와 무궁화

경주학도병서명문태극기 -1950년 일어난 한국전쟁 당시 경주시 지역에서 자원한 학도병들의 서명이 있는 태극기. 학도병들의 굳은 의지와 각오가 태극기 바탕에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다.

경주학도병서명문태극기 -1950년 일어난 한국전쟁 당시 경주시 지역에서 자원한 학도병들의 서명이 있는 태극기. 학도병들의 굳은 의지와 각오가 태극기 바탕에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다.

황인식 (서양와)- 아름다운 향기를 함께 뽐낸다.

황인식 (서양와)- 아름다운 향기를 함께 뽐낸다.

무운장구태극기 - 1950년 일어난 한국전쟁 당시 학도병 지원용사 11명이 서명한 태극기. 태극 둘레에 무운장구라고 적혀있고 학도병 지원용사들의 비장한 각오가 씌어 있다. 6.25전쟁에서 전쟁터에 가기 전 태극기에 한마디씩 글을써서 남긴 태극기이다.

무운장구태극기 - 1950년 일어난 한국전쟁 당시 학도병 지원용사 11명이 서명한 태극기. 태극 둘레에 무운장구라고 적혀있고 학도병 지원용사들의 비장한 각오가 씌어 있다. 6.25전쟁에서 전쟁터에 가기 전 태극기에 한마디씩 글을써서 남긴 태극기이다.

윤경식 (서양화)-무궁화 꽃밭건너편 한반도의 명소

윤경식 (서양화)-무궁화 꽃밭건너편 한반도의 명소

건국법정대학 학도병서명문 태극기(등록문화재 제392호) - 1950년 9월 부산에 주둔하고 있던 육군부대에서 학도병에 자원한 학생들이 서명한 태극기. 부산에 있던 건국법정대학 학생들이 주축이 되었다. 생사를 넘나들던 전쟁터에서 고이 간직되어 온 태극기이다.

건국법정대학 학도병서명문 태극기(등록문화재 제392호) - 1950년 9월 부산에 주둔하고 있던 육군부대에서 학도병에 자원한 학생들이 서명한 태극기. 부산에 있던 건국법정대학 학생들이 주축이 되었다. 생사를 넘나들던 전쟁터에서 고이 간직되어 온 태극기이다.

김경원 (서양화)-무궁화백두산 천지 상공에는 태극기

김경원 (서양화)-무궁화백두산 천지 상공에는 태극기

유관종부대원 (유관종 부대원 태극기(등록문화재 제390호)) 한국전쟁 중인 1950년 10월 대한민국 육군 유관종 소위가 호남지구 진격작전 때 사용한 태극기. 바탕에, 백두산에 태극기를 휘날리겠다는 각오와 무운장구를 염원하는 문구가 씌어 있다. 당시의 전투경로 등의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유관종부대원 (유관종 부대원 태극기(등록문화재 제390호)) 한국전쟁 중인 1950년 10월 대한민국 육군 유관종 소위가 호남지구 진격작전 때 사용한 태극기. 바탕에, 백두산에 태극기를 휘날리겠다는 각오와 무운장구를 염원하는 문구가 씌어 있다. 당시의 전투경로 등의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장은정 (서양화)-무궁화와 평화통일 염원 전통부

장은정 (서양화)-무궁화와 평화통일 염원 전통부

미 해병대원 버스비어 태극기(등록문화재 제383호)- 한국전쟁 당시 미국 해병대원 버스비어 (A.W.Busbea)에게 서울에서 한 시민이 준 태극기. 4괘의 배열이 건곤리감으로 되어 있다. 버스비어는 이 태극기를 전쟁기간 내내 군용트럭에 꽂고 다녔다고 한다. 그가 미국으로 가져가 보관하다가 2005년 11월 경기도 하남시에 기증했다.

미 해병대원 버스비어 태극기(등록문화재 제383호)- 한국전쟁 당시 미국 해병대원 버스비어 (A.W.Busbea)에게 서울에서 한 시민이 준 태극기. 4괘의 배열이 건곤리감으로 되어 있다. 버스비어는 이 태극기를 전쟁기간 내내 군용트럭에 꽂고 다녔다고 한다. 그가 미국으로 가져가 보관하다가 2005년 11월 경기도 하남시에 기증했다.

조남옥 (서양화)-남궁억 애국지사와 무궁화 영상

조남옥 (서양화)-남궁억 애국지사와 무궁화 영상

한국전쟁 참전 UN군 태극기 - 한국전쟁 중인 1950~1951년 시기 함경도 지역으로 북진했던 유엔군이 소장하고 있던 태극기. 태극기 뒷면에 당시 유엔군의 이동지역이 적혀 있다. 우리나라 지명의 영문 대문자 표기가 특이하다.

한국전쟁 참전 UN군 태극기 - 한국전쟁 중인 1950~1951년 시기 함경도 지역으로 북진했던 유엔군이 소장하고 있던 태극기. 태극기 뒷면에 당시 유엔군의 이동지역이 적혀 있다. 우리나라 지명의 영문 대문자 표기가 특이하다.

조인영 (서양화)-무궁화 태극기 그리고 동해바다 독도

조인영 (서양화)-무궁화 태극기 그리고 동해바다 독도

반공 포로가 만든 태극기 - 1953년 한국전쟁 시기 거제도에 수용되어 있던 북한군 포로 가운데 북송을 거부한 반공포로가 만든 태극기. 1953년 6월 18일, 19일에 단행된 반공포로의 석방은 대한민국이 주권국임을 내외에 천명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반공 포로가 만든 태극기 - 1953년 한국전쟁 시기 거제도에 수용되어 있던 북한군 포로 가운데 북송을 거부한 반공포로가 만든 태극기. 1953년 6월 18일, 19일에 단행된 반공포로의 석방은 대한민국이 주권국임을 내외에 천명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송정익(서예) - 무궁화는 삼천리에 피고 빛과 향기는 억만년 토록

송정익(서예) - 무궁화는 삼천리에 피고 빛과 향기는 억만년 토록

07유관순2 - 유관순열사의 옥중사진과 유관순열사의 남긴 말. “나라에 바칠 목숨이 오직 하나밖에 없는 것만이 이 소녀의 유일한 슬픔입니다.” 어린소녀였던 유관순열사는 태극기를 들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07유관순2 - 유관순열사의 옥중사진과 유관순열사의 남긴 말. “나라에 바칠 목숨이 오직 하나밖에 없는 것만이 이 소녀의 유일한 슬픔입니다.” 어린소녀였던 유관순열사는 태극기를 들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백금숙(서예) -삼천리 방방곡곡 곳곳마다 잘도 자라 곱게 피었다.

백금숙(서예) -삼천리 방방곡곡 곳곳마다 잘도 자라 곱게 피었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정부요인 환국기념관 사진. - 1919년 상하이에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일본의 대륙침략으로 각지를 전전하다가 1940년 9월 충칭에 정착하였다. 자료는 중국 충칭의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광복을 맞이한 김구선생과 임정 요인들이 환국을 앞둔 1945년 11월 3일 촬영한 사진이다. 김구 선생을 비롯하여 임시정부 요인들이 태극기를 들고 있으며 현재 복원된 충칭 대한민국임시정부 청사에도 전지되어 있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정부요인 환국기념관 사진. - 1919년 상하이에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일본의 대륙침략으로 각지를 전전하다가 1940년 9월 충칭에 정착하였다. 자료는 중국 충칭의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광복을 맞이한 김구선생과 임정 요인들이 환국을 앞둔 1945년 11월 3일 촬영한 사진이다. 김구 선생을 비롯하여 임시정부 요인들이 태극기를 들고 있으며 현재 복원된 충칭 대한민국임시정부 청사에도 전지되어 있다.

박상준(서예) -곳곳마다 풍요로운 향기 가득 아름 다운 무궁화

박상준(서예) -곳곳마다 풍요로운 향기 가득 아름 다운 무궁화

태극기 00007 -6.25전쟁 당시 전선을 방문한 이승만 대통령이 태극기를 펴들고 국군용사와 함께 찍은 사진이다. 언제, 어디서나 태극기는 우리민족, 우리국민의 마음의 지주였음을 알 수 있다.

태극기 00007 -6.25전쟁 당시 전선을 방문한 이승만 대통령이 태극기를 펴들고 국군용사와 함께 찍은 사진이다. 언제, 어디서나 태극기는 우리민족, 우리국민의 마음의 지주였음을 알 수 있다.

장순화(현 물 작품 없음)

장순화(현 물 작품 없음)

출전서명 태극기 - 북한의 불법 남침으로 전쟁이 발발하자 젊은 군인용사들이 전쟁터 출정에 앞서 조국수호를 맹세하면서 서명한 태극기. 무운장구, 화랑도, 영웅 등의 글자가 선명하다. 6.25전쟁은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많은 젊은 목숨이 조국수호를 위해 희생되었다.

출전서명 태극기 - 북한의 불법 남침으로 전쟁이 발발하자 젊은 군인용사들이 전쟁터 출정에 앞서 조국수호를 맹세하면서 서명한 태극기. 무운장구, 화랑도, 영웅 등의 글자가 선명하다. 6.25전쟁은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많은 젊은 목숨이 조국수호를 위해 희생되었다.

전세권 (서예)-나라꽃 무궁화향기 가득

전세권 (서예)-나라꽃 무궁화향기 가득

한국광복군총사령부성립전례식- 한국 광복군(韓國 光復軍)은 1940년 9월 17일 중화민국 충칭에서 조직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정규군이며, 환국하여 대한민국 국군의 모체가 되었다. 1939년 1월 창립된 한국독립당 당군(黨軍)과 기타 독립군 및 지청천, 이범석 등이 이끌고 온 만주 독립군과 연합하여 1940년 9월 광복군 성립 전례식을 갖고 결성되었다. 자료는 김구 주석과 광복군 총사령관 지청천 장군의 모습이다.

한국광복군총사령부성립전례식- 한국 광복군(韓國 光復軍)은 1940년 9월 17일 중화민국 충칭에서 조직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정규군이며, 환국하여 대한민국 국군의 모체가 되었다. 1939년 1월 창립된 한국독립당 당군(黨軍)과 기타 독립군 및 지청천, 이범석 등이 이끌고 온 만주 독립군과 연합하여 1940년 9월 광복군 성립 전례식을 갖고 결성되었다. 자료는 김구 주석과 광복군 총사령관 지청천 장군의 모습이다.

김학순 (서예)-태극기휘날리며 평화그리며

김학순 (서예)-태극기휘날리며 평화그리며

김구선생 귀환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 환국 당시의 김구 주석과 태극기. 대형 환영화환을 걸고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 들과 함께 환국하는 장면이다.

김구선생 귀환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 환국 당시의 김구 주석과 태극기. 대형 환영화환을 걸고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 들과 함께 환국하는 장면이다.

윤인숙 (한국화)-무궁화삼천리 향기로운 꽃

윤인숙 (한국화)-무궁화삼천리 향기로운 꽃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 환국 축하 태극기 - 1945년 2월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들의 환영식에서 사용한 태극기.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항복으로 미군과 소련군이 한반도의 남과 북에 진주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정부형식으로 환국하지 못하고 개인자격으로 환국했다. 김구 주석과 국무위원을 중시으로 한 제1진 15인이 1945년 12월 3일 중국 상하이에서 서울로 환국했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 환국 축하 태극기 - 1945년 2월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들의 환영식에서 사용한 태극기.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항복으로 미군과 소련군이 한반도의 남과 북에 진주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정부형식으로 환국하지 못하고 개인자격으로 환국했다. 김구 주석과 국무위원을 중시으로 한 제1진 15인이 1945년 12월 3일 중국 상하이에서 서울로 환국했다.

이정숙 (한국화)-백단심 홍단심

이정숙 (한국화)-백단심 홍단심

9.28 서울수복태극기 - 서울을 수복한 국군이 중앙청에 게양한 태극기. 1950년 6월 25일 전쟁으로 정부는 부산으로 옮겨졌고 영남지방 일부만 남고 모두 북한군이 점령했었다. 9.15 인천상륙작전을 시작으로 28일에 서울을 수복하여 중앙청 앞에 태극기를 게양했다. 무장군인용사들의 게양하는 모습이 지금은 역사 속의 한 장면이다.

9.28 서울수복태극기 - 서울을 수복한 국군이 중앙청에 게양한 태극기. 1950년 6월 25일 전쟁으로 정부는 부산으로 옮겨졌고 영남지방 일부만 남고 모두 북한군이 점령했었다. 9.15 인천상륙작전을 시작으로 28일에 서울을 수복하여 중앙청 앞에 태극기를 게양했다. 무장군인용사들의 게양하는 모습이 지금은 역사 속의 한 장면이다.

이인자 (한국화)-무궁화꽃 향기 가득 휘날리는 태극기

이인자 (한국화)-무궁화꽃 향기 가득 휘날리는 태극기

63- 의정원- 대한민국임시의정원 태극기는 개수도 많지만 당시 대한민국 의정원에서 그때그때 제작할 때와 제작한 제작자에 따라 태극문양과 건곤감리가 조금씩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태극기 제작규정도 정리되지 못한 채 오직 애국지사들의 마음의 지주로 활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63- 의정원- 대한민국임시의정원 태극기는 개수도 많지만 당시 대한민국 의정원에서 그때그때 제작할 때와 제작한 제작자에 따라 태극문양과 건곤감리가 조금씩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태극기 제작규정도 정리되지 못한 채 오직 애국지사들의 마음의 지주로 활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진순 (서양화)-무궁화는 태극과 어우러져 핀다.

이진순 (서양화)-무궁화는 태극과 어우러져 핀다.

64-01 1의정원 - 1923년 상해 대한민국임시 의정원에 게양되었던 태극기.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위원을 지낸 김붕준(1888∼1950)이 부인과 함께 만들었다고 전한다. 광복 후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원들이 환국할 때 가지고 온 것이다. 태극의 음양은 좌우로 4괘는 건곤리감으로 배열되어 있다.

64-01 1의정원 - 1923년 상해 대한민국임시 의정원에 게양되었던 태극기.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위원을 지낸 김붕준(1888∼1950)이 부인과 함께 만들었다고 전한다. 광복 후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원들이 환국할 때 가지고 온 것이다. 태극의 음양은 좌우로 4괘는 건곤리감으로 배열되어 있다.

인옥순 (서양화)-노령수에 핀 무궁화

인옥순 (서양화)-노령수에 핀 무궁화

대한만국 정부수립 당시 태극기 -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수립 축하식 행사장에 게양된 태극기. 대한민국정부는 대한민국임시정부를 계승했다. 대한민국헌법 전문에는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대한만국 정부수립 당시 태극기 -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수립 축하식 행사장에 게양된 태극기. 대한민국정부는 대한민국임시정부를 계승했다. 대한민국헌법 전문에는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백정숙 (서양화)-태극기 무궁화독도 그리고 굉이갈매기

백정숙 (서양화)-태극기 무궁화독도 그리고 굉이갈매기

광복절과 대통령위임식 태극기 - 대한민국정부수립 초대 대통령 취임식장에는 당시의 미군정요인들도 알 수 있다. 1919년 상해 임시정부수립부터 27년 광복 후 만 3년 만에 대한민국정부가 수립되었다. 북한의 반대로 통일정부가 수립되지 못했음은 너무도 안타까운 일이었다. 이날로 미군정이 끝나고 우리정부가 수립된 경축기념 태극기이다.

광복절과 대통령위임식 태극기 - 대한민국정부수립 초대 대통령 취임식장에는 당시의 미군정요인들도 알 수 있다. 1919년 상해 임시정부수립부터 27년 광복 후 만 3년 만에 대한민국정부가 수립되었다. 북한의 반대로 통일정부가 수립되지 못했음은 너무도 안타까운 일이었다. 이날로 미군정이 끝나고 우리정부가 수립된 경축기념 태극기이다.

박지수 (서양화)-늦가을 무궁화 먼산엔 눈이 내렸다.

박지수 (서양화)-늦가을 무궁화 먼산엔 눈이 내렸다.

삼일독립선언기념장 태극기 - 메달 중심부에 태극을 담은 기념장 "삼일독립선언기념장"이라고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대한독립촉성전라북도협의회 대한 이십팔년 삼월 일일" 이라고 새겨져 있다. 광복 이듬해 3.1절을 기념하는 매달임을 알 수 있고 삼일독립정신이 이어져왔음을 알 수 있다.

삼일독립선언기념장 태극기 - 메달 중심부에 태극을 담은 기념장 "삼일독립선언기념장"이라고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대한독립촉성전라북도협의회 대한 이십팔년 삼월 일일" 이라고 새겨져 있다. 광복 이듬해 3.1절을 기념하는 매달임을 알 수 있고 삼일독립정신이 이어져왔음을 알 수 있다.

김규성 (서양화)-무궁화독도 위애 태극기 펼쳐져 있다.

김규성 (서양화)-무궁화독도 위애 태극기 펼쳐져 있다.

Flag38- 완장 중앙에 태극기를 담고 좌우로 애국멸공이라고 되어있다. 전쟁 중에 제작하여 사용된 완장으로 현역군인이 아닌 많은 애국청년들이 나라를 위해 자발적으로 결성된 단체들과 학도병이 아닌 학생들도 많았다. 모두가 공산군과 싸운 민간청년단체들이다.

Flag38- 완장 중앙에 태극기를 담고 좌우로 애국멸공이라고 되어있다. 전쟁 중에 제작하여 사용된 완장으로 현역군인이 아닌 많은 애국청년들이 나라를 위해 자발적으로 결성된 단체들과 학도병이 아닌 학생들도 많았다. 모두가 공산군과 싸운 민간청년단체들이다.

이달숙 (서양화)-무궁화로 장식된 둘러쌓인 문양

이달숙 (서양화)-무궁화로 장식된 둘러쌓인 문양

윤봉길의사 거사 전 태극기 앞에서 찍은 사진 - 윤봉길 의사는 나라위해 목숨 바치겠노라고 맹세했었다. 적장을 죽이면 죽을 것은 정해진 사실이다. 태극기를 마음의 지주로 삼아 태극기 앞에서 나라위해 목숨 바칠 맹세를 하는 윤봉길 의사와 함께한 태극기. 후손들세대가 보는 순간 머리 숙여 추모하고 애국심을 다져주는 태극기이다.

윤봉길의사 거사 전 태극기 앞에서 찍은 사진 - 윤봉길 의사는 나라위해 목숨 바치겠노라고 맹세했었다. 적장을 죽이면 죽을 것은 정해진 사실이다. 태극기를 마음의 지주로 삼아 태극기 앞에서 나라위해 목숨 바칠 맹세를 하는 윤봉길 의사와 함께한 태극기. 후손들세대가 보는 순간 머리 숙여 추모하고 애국심을 다져주는 태극기이다.

최치순(서양화)-무궁화와 우리 민요

최치순(서양화)-무궁화와 우리 민요

원심창 의사 태극기 - 독립운동가 원심창(1906 ~1973) 의사가 간직하고 있던 태극기. 원심창 의사는 3.1운동 후 일본으로 건너가 무정부주의 단체에 가담해 활동했고, 1925년 베이징과 상하이에서 무정부주의 운동을 전개했다. 1933년 주중국 일본공사를 암살하기로 계획했으나 첩자의 밀고로 거사 현장에서 체포되었다. 무기징역을 선고 받고 복역하다가 1945년 출옥했다.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원심창 의사 태극기 - 독립운동가 원심창(1906 ~1973) 의사가 간직하고 있던 태극기. 원심창 의사는 3.1운동 후 일본으로 건너가 무정부주의 단체에 가담해 활동했고, 1925년 베이징과 상하이에서 무정부주의 운동을 전개했다. 1933년 주중국 일본공사를 암살하기로 계획했으나 첩자의 밀고로 거사 현장에서 체포되었다. 무기징역을 선고 받고 복역하다가 1945년 출옥했다.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권영숙 (서양화)-태극기 한복판에 자리잡은 무궁화

권영숙 (서양화)-태극기 한복판에 자리잡은 무궁화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에 참가하면서 미 해병 노디가드가 소장했던 태극기. 노디가드 해병은 미국 해군함정 로르이엘핀지 장군 호에 탑승했었다. 건은 사람, 곤은 땅, 감은 하늘, 이는 자연이라고 표기한 것이 이채롭다.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에 참가하면서 미 해병 노디가드가 소장했던 태극기. 노디가드 해병은 미국 해군함정 로르이엘핀지 장군 호에 탑승했었다. 건은 사람, 곤은 땅, 감은 하늘, 이는 자연이라고 표기한 것이 이채롭다.

정원태 (서양화)-무궁화 독도,태극기가 조화롭고 훈민정음 곁드려져

정원태 (서양화)-무궁화 독도,태극기가 조화롭고 훈민정음 곁드려져

덕적도형제서명태극기 -덕적도 출신 형제가 서명한 태극기. 한국전쟁에 참전한 덕적도 출신인 송조호, 송인호 형제와 전우들이 함께 전투에 참여했던 미군에게 감사의 뜻으로 전달한 태극기이다. 정사각형의 태극기로 지금의 태극기와는 태극과 4괘가 좌우로 바뀌어 있다.

덕적도형제서명태극기 -덕적도 출신 형제가 서명한 태극기. 한국전쟁에 참전한 덕적도 출신인 송조호, 송인호 형제와 전우들이 함께 전투에 참여했던 미군에게 감사의 뜻으로 전달한 태극기이다. 정사각형의 태극기로 지금의 태극기와는 태극과 4괘가 좌우로 바뀌어 있다.

광복의 환희와 태극기 - 광복의 환희를 기뻐하며 거리 행진에 나선 시민들과 태극기. 1945년 8월 15일은 일본제국주의 압제로부터 벗어나 국권을 회복한 날로 대한독립의 환희가 전국적으로 물결쳤다. 이 자료는 서울역에서 일제의 식민통치 기관이었던 총독부 건물까지 태극기를 흔들며 거리를 행진하는 시민들의 모습이다.

광복의 환희와 태극기 - 광복의 환희를 기뻐하며 거리 행진에 나선 시민들과 태극기. 1945년 8월 15일은 일본제국주의 압제로부터 벗어나 국권을 회복한 날로 대한독립의 환희가 전국적으로 물결쳤다. 이 자료는 서울역에서 일제의 식민통치 기관이었던 총독부 건물까지 태극기를 흔들며 거리를 행진하는 시민들의 모습이다.

5월 단오절의 그네와 태극기 - 전통명절 단오절 풍속인 그네의 구조물에 게양된 태극기. 단오는 한국 중국 일본 등에서 지키는 명절로 수릿날, 천중절이라고도 한다. 단오의 단은 첫 번째를 의미하고, 오는 오, 곧 다섯과 뜻이 통하므로 단오는 5월 초닷새를 말한다. 단오의 원형이 잘 보존된 강릉단오제는 1967년 우리나라 주요무형문화재 제13호로 지정되었으며 2005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그 가치를 널리 인정받고 있다.

5월 단오절의 그네와 태극기 - 전통명절 단오절 풍속인 그네의 구조물에 게양된 태극기. 단오는 한국 중국 일본 등에서 지키는 명절로 수릿날, 천중절이라고도 한다. 단오의 단은 첫 번째를 의미하고, 오는 오, 곧 다섯과 뜻이 통하므로 단오는 5월 초닷새를 말한다. 단오의 원형이 잘 보존된 강릉단오제는 1967년 우리나라 주요무형문화재 제13호로 지정되었으며 2005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그 가치를 널리 인정받고 있다.

독립군 피묻은 태극기 - 1920년 6월 봉오동전투 때 독립군이 사용한 태극기. 대한민국 독립을 위해 독립군이 흘린 피의 얼룩이 뚜렷하게 보인다. 봉오동전투는 중국 길림성 왕청현 봉오동에서 홍범도 장군 등이 이끈 한국독립군 연합부대가 일본군을 무찌르고 크게 승리한 전투이다. 태극기의 4괘는 지금과 같지만 태극의 음양이 우좌로 마주보고 있다.

독립군 피묻은 태극기 - 1920년 6월 봉오동전투 때 독립군이 사용한 태극기. 대한민국 독립을 위해 독립군이 흘린 피의 얼룩이 뚜렷하게 보인다. 봉오동전투는 중국 길림성 왕청현 봉오동에서 홍범도 장군 등이 이끈 한국독립군 연합부대가 일본군을 무찌르고 크게 승리한 전투이다. 태극기의 4괘는 지금과 같지만 태극의 음양이 우좌로 마주보고 있다.

박효주 (서양화)-무궁화꽃송이와 떠오르는 유관순 열사

박효주 (서양화)-무궁화꽃송이와 떠오르는 유관순 열사

대대로 물려 받은 조국강상을 언제나 잊지 말고 노래하자

대대로 물려 받은 조국강상을 언제나 잊지 말고 노래하자

겨레여 우리에겐 조국이 있다 내사랑 바칠곳은 오직 여기뿐

겨레여 우리에겐 조국이 있다 내사랑 바칠곳은 오직 여기뿐

꽃의 향기는 천리를 가고 사람의 덕은 만년을 지닌다

꽃의 향기는 천리를 가고 사람의 덕은 만년을 지닌다

꽃의 향기는 천리를 가고 사람의 덕은 만년을 지닌다

꽃의 향기는 천리를 가고 사람의 덕은 만년을 지닌다